사목지신(徙木之信). 중국의 진나라 상앙이 법령을 개정하면서 수도 남문에 큰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자에게 상금을 걸었고, 이를 옮긴 사람이 나타나자 약속대로 포상했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먼저 진정성을 보여 신뢰를 쌓는다’는 의미다.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 논어(論語) 안연편에 나오는 말로 ‘백성이 믿지 않으면 나라가 존재할 수 없다’는 뜻으로, 신뢰가 없으면 조직이나 국가 또는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
신뢰는 인간관계의 기본이자, 사회적 상호작용의 핵심 요소다. 하물며 국민과의 약속인 정치는 두말할 필요 없이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비록 작은 약속이라도 허투루 여기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사소한 약속을 가볍게 여기면 큰 약속 역시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정치인의 말 한마디가 무겁게 받아들여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명분 또한 정치의 출발점이다. 맹자는 왕도정치를 강조하며 백성을 위한 정당한 이유 즉 ‘명분’ 없는 권력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봤다. 도리에 맞는 명분 위에서 이루어지는 정치만이 지속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명정언순(名正言順). 명분(名分)이 정당하면 말도 이치에 맞는다는 말로, 일을 할 때 명분이 있고 정당하며 이유가 타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반대로 명분이 무너진 정치는 쉽게 흔들린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여도 속은 비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 ‘조삼모사(朝三暮四)’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말을 바꾸고 기준을 흔드는 모습은 결국 신뢰를 갉아먹는다. 당장은 유리해 보일지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정치에 대한 불신만 키운다.
결국 정치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제도와 시스템이 아무리 정교해도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고, 그 사람을 지탱하는 것은 신뢰와 명분이다. 이 두 가지가 무너지면 정치의 외형은 남아 있어도 그 내용은 공허해진다.
신뢰는 정치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 요소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꾸준함이 신뢰를 만든다. 신뢰는 화려한 언변이 아니라 반복되는 실천 속에서 쌓인다.
명분이 없는 정치는 순간의 이익과 계산에 따라 흔들리기 쉽다. 오늘의 말이 내일 바뀌고, 원칙보다 유불리가 앞서는 정치가 반복된다면 국민은 더 이상 귀 기울이지 않는다. 명분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돼야 하는 가치다.
최근 박수현 의원의 행보를 놓고 말들이 많다. 박 의원의 충남지사 출마에 따른 ‘지역구 유기론’과 ‘보궐선거 책임론‘이 거세다.
도지사 출마 선언 이후 지역구인 공주·부여·청양 주민들을 버렸다는 비판이 팽배한 상황에서 의원직 사퇴 시점까지 저울질하는 모양새를 보이면서 “1년여를 의원 없는 지역구로 만들 셈이냐”는 비난이다.
박 의원은 2년 전 제22대 국회의원선거에 나서면서 “봉사할 기회를 달라”며 눈물로 읍소했다. 그러고는 채 2년도 안 돼 이렇다 저렇다 충분한 설명도 없이 또 다른 길을 모색하면서 “당시의 눈물이 ‘악어의 눈물’이 아니길 바란다”는 볼멘 목소리다.
의원직 사퇴 배경에 대해 도민들이 납득할 만한 해명뿐만 아니라 의원직 사퇴 시점에 대해서도 당 뒤에 숨는 비겁한 변명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이달 30일까지 사퇴하지 않으면 1년 뒤에나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된다.
혹여 마땅한 ‘포스트 박수현'이 없다는 이유 즉 철저히 당의 유불리를 계산한 포석이거나 충남지사 낙선을 의식한 포석이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으려면 사퇴 시점을 늦춰서는 안 된다. 보궐선거가 제때 치러지지 않는다면 민심은 싸늘하게 등을 돌릴게 뻔하다.
박 의원은 2년 전 “공주·부여·청양 주민들을 잘 섬기고, 정말 일 잘하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당선 소감과 함께 공주대 의대 신설 및 종합 부속병원 설립, 대전-세종-공주 CTX-a 노선 신설 등 수십 개의 공약을 내세웠다. 혹여 공수표를 남발하지 않았는지도 가슴에 손을 얹고 되돌아볼 일이다.
정진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보궐선거 출마설에 대해서도 지역 민심은 싸늘하다. 정 전 의원의 출마설이 고개를 들면서 국민의힘 내부에서조차 지방선거의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정 전 의원의 등판은 ‘본인의 사법리스크 방탄용’이라는 비판과 함께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기득권 챙기기에 급급한 구태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했으면 한다.
이건용 전 금강일보 기자
